소현세자, 조선에 돌아와 의문사를 당하다 - 인조의 질투
청 황제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입지를 다지던 소현세자로 인해 인조는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품었다. 명이 무너진 후, 인질생활을 끝내고 조선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독살의 의심이 있는 의문사를 당했고, 그의 가족들도 모두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다.
인조, 유능한 아들 소현세자를 질투하다
청나라에서 소현세자의 입지는 굳건했습니다. 한 번은 인조가 몸이 안 좋아져서 세자가 일시적으로 귀국을 한 적이 있어요. 이때 청 태종은 세자를 위해 직접 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청 태종이 세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런데 인조는 이 소식을 듣고 극심한 분노와 질투를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에겐 무릎을 꿇게 한 청 태종이 세자를 위해서는 송별연을 베푼 것에 화가 난 거죠. 저라면 아들의 활약을 대견스러워했을 거 같은데…, 인조의 마음속에는 세자가 자신의 왕 자리를 뺏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싹이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소현세자, 귀국 직후 의문의 죽음을 당하다
마침내 청에 의해 명은 무너지게 됩니다. 더 이상 볼모는 필요 없었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해 인질로 잡혀간 조선인들은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정확히 9년 만이었습니다. 16살이었던 세자는 어느덧 청년이 되었죠. 그런데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죽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인은 학질이란 병이었습니다. 이건 심각한 병이 아녜요. 그런데 왕의 주치의인 이형익이란 사람이 세자에게 병을 고쳐준답시고 침을 놨는데 사흘 뒤 사망했습니다. 뭔가 석연치 않죠. 실제로 당시엔 아들을 질투한 인조가 주치의를 통해 세자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어요. 이 상황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얼굴에 있는 7 구멍에서는 피가 나왔고, 검은 천으로 얼굴의 반을 가렸는데 사람들이 얼굴과 천을 구분하지 못했다.
-『인조실록』, 6월 27일
실제로 독살을 당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담당 의사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 시대의 관례였는 데도 인조는 주치의를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재밌는 일화가, 이 사건 이후 봉림대군도 감기에 걸렸는데 이형익에게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거부했다고 해요.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고, 소현세자의 가족들은 죽임을 당하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소현세자에게는 세자빈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었어요. 소현세자가 죽으면 적장자인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는 게 맞죠. 그런데 인조는 차남인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아닌 시동생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 강 씨의 얼굴이 흙빛으로 바뀝니다. 이건 완전히 인조가 세자빈을 내치겠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세자빈 강 씨를 모시던 시녀들이 줄줄이 누명을 쓰고 처형을 받는 일이 벌어집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던데, 인조에겐 아들도 며느리도 권력에 방해되면 제거할 수 있는 정적들이었던 거죠. 결국 인조는 자신을 독살하려 했다고 세자빈 강 씨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고 어린 두 손자들도 귀양을 보낸 뒤 죽입니다.